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金尙鎔.1902∼1951.6.20) 시인ㆍ영문학자. 경기도 연천(連川) 생. 호 월파(月坡). 아버지는 기환(基煥),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丁氏)이며, 시조시인 오남(午男)은 여동생이다. 191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21년에 졸업하였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듬해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의 탄압으로 영문학 강의가 폐강되어, 1943년 교수직을 사임, 서울 종로 2가에서 장안화원(長安花園)을 경영했다. 해방 후 미군정(美軍政)으로부터 강원도 지사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 1945년 이화여대로 돌아가 교무처장의 일을 맡는 한편, 영문학 교수로 지냈다. 9ㆍ28 서울 수복 후 공보처 고문을 역임하고, 구(舊) [코리아 타임스]의 사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1951년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그해 식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의 최초의 문단활동은 1926년 동아일보에 시 <일어나거라>를 발표하면서 출발하였고, 그 뒤 <이날도 앉아서 기다려 볼까>, <무상(無常)>, <그러나 거문고 줄은 없고나> 등을 계속 발표하였으나, 이때 발표한 창작시는 미숙한 것들이었다.
그의 시가 평단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35년 [시원(詩苑)]에 <나>, <무제(無題)>, <마음의 조각> 등 몇 편의 가작을 발표하고 나서부터이다. 이후 <물고기 하나> <망향(望鄕)> 등 당시 일제하의 불안시대에 처한 지식인의 울분을 담은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 잡지 [문장] 등에 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9년 유일한 시집인 <망향>을 간행했는데, 우수(憂愁)와 동양적 체념이 깃든 관조적 서정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을 가까이하려는 단면을 드러내며 그와 함께 대상을 따뜻한 마음씨로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북해도-20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