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 유문(춘향의 말 3)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쏘내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에요!
서정주-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 부안에서 성장하였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의 아버지는 고등교육을 마친 지식인이었으며 따라서 미당도 상당히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보여진다. 1933년 겨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36년에 김광균·김동리·오장환 등과 함께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때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 태평양 전쟁을 찬양해 당시,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해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는 고백을 한 바 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해방 후에는 당시 문학계를 풍미하던 좌익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여, 이른바 순수 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우익 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과 대결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 등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줄곧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군부 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문학적 명성과는 별도로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고택이 남아 있으나 폐가로 방치되어 있다.
2000년 12월 24일 사망. 향년 86세.
남원 광한루-2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