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1917~1945). 북간도 출생.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2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2월 16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 사후 친인들에 의해 작품들이 모아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간됨.
금문교-20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