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 호는 이산(怡山).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 1918년 함경북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0년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경성 중동고등보통학교로 전입한 후 1924년에 졸업했다. 같은 해 일본 와세다 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고 1928년 졸업.
1927년에 동창회지에 시 〈모기장〉을 발표하면서 창작활동과 문단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 후 경성 중동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33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했고, 여기서 서항석, 함대훈, 모윤숙, 노천명 등과 사귀었다.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중앙 문화 협회라는 문인단체를 결성하기도 했고, 경희대 교수와 대통령 공보실장을 역임했다.
1965년 야구 경기 관람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에도 계속 창작활동을 하여 그의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했다. 이 시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다.
포항양동마을-20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