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문정희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 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 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이 취직해 큰 사무실 한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부인 교수부인 간호사도 됐을 거야
문화 센터에서 노래를 배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갈지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문정희(文貞姬, 1947년 5월 25일 ~ ).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에 《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문정희 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수필집 《지상에 머무는 동안》 등을 출간했다.
2007년 현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원 정선 아우라지-2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