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1979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연세문학회에 입회하여 본격적인 창작을 시작. 1989년 3월7일 새벽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유고집으로 <입속의 검은 잎>이 있다. 아름다운 절망.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90년대 젊은이들의 아이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