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부침
장석주
1
누이여, 오늘은 왼종일 바람이 불고
사람이 그리운 나는 짐승처럼 사납게 울고 싶었다.
벌써 빈 마당엔 낙엽이 쌓이고
빗발들은 가랑잎 위를 건너 뛰어다니고
나는 머리칼이 젖은 채
밤 늦게까지 편지를 썼다.
자정 지나 빗발은 흰 눈송이로 변하여
나방이처럼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유리창에 와 흰 이마를 부딪치곤 했다.
나는 편지를 마저 쓰지 못하고
책상 위에 엎드려 혼자 울었다.
2
눈물 글썽이는 누이여
쓸쓸한 저녁이면 등을 켜자.
저 고운 불의 모세관 일제히 터져
차고 매끄러운 유리의 내벽에
밝고 선명하게 번져가는 선혈의 빛.
바람 비껴불 때마다
흔들리던 숲도 눈보라 속에 지워져가고.
조용히 등의 심지를 돋우면
밤의 깊은 어둠한곳을 하얗게 밝히며
홀로 근심없이 타오르는 신뢰의 하얀 불꽃.
등이 하나의 우주를 밝히고 있을 때
어둠은 또 하나의 우주를 덮고 있다.
슬퍼말아라, 나의누이여
많은 소유는 근심을 더하고
늘 배부른 자는 남의 아픔을 모르는 법
어디 있는가, 가난한 나의 누이여
등은 헐벗고 굶주린 자의 자유
등 밑에서 신뢰는 따듯하고 마음은 넉넉한 법,
돌아와 쓸쓸한 저녁이면 등을 켜자.
장석주-시, 소설, 문학평론, 출판, 방송진행, 북 칼럼리스트, 대학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자기성찰의 메시지가 담긴 시를 써왔다. 시집으로<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크고 헐렁헐렁한 바지>,<몽해 항로>등이 있다.
큐수 유후인-2013.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