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이병률
왼편으로 구부려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이병률-충북 제천에서 태어남.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졸업.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현대시학>작품상등을 수상했으며 ‘시힘’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