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종기-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활동하며 모국어로 시를 썼다. 모국을 향한 그리움과 생명을 다루는 치열한 하루하루를 맑고 투명한 서정으로 표현했다. 오하이오 의대교수를 역임했고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그 나라 하늘빛>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