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등
최명란
함께 산다는 것은 너와 나의 등이 점점 무너져 감이다
야간 병원 읍급실에서 늑막에 고인 물을 빼기위해
긴 주삿바늘을 든 의사 앞에 둥글게 구부리고 있는 너의 등을 보았을 때
오랜 시간 나를 짊어지고 온 네 등의 검고 깊은 자국을 보았네
나는 뒤편에 서서 긴장한 몸을 차갑게 떨며
고이는 눈물을 다시 눈으로 삼키기 위해 하릴없이 응급실 자동문만 들락거렸네
응급실 바깥 정원의 라일락 향기가 잠시 따라 들어와
포르말린 냄새를 살짝 밀어냈을 때 나는 우리 청춘의 교정을 생각했네
그날 라일락 향기 아래서 네가 나를 짊어지기 시작해
이십 년 꼼짝없이 불평 없이 그대로 나를 지고 왔다는 것을
너의 등에 나를 맡기고 나는 단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지
너의 등에 나를 짊어지고 너는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지
무거운 나를 짊어진 채
바리케이트에 걸려 넘어지고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며
나무가 물을 먹듯 술을 먹던 남자야
오늘 응급실에 실려온 너의 등을 보고서 비로소 생각하네
나를 짊어진 채 축축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너의 등에서 나는
자정이 넘기 전에 훌쩍 내려서야만 한다는 것을
최명란-경남진주에서 태어나 세종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동시작가이자 시인으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굳건한 의지의 시, 고지식할 정도로 고집스레 희망을 담아낸 시를 써냈다.
창녕우포늪-20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