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광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고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 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오빠고
조카고
아저씨고
제자고
선생이고
납세자고
예비군이고
친구고
적이고
환자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가장이지
오직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김광규(金光圭, 1941년 ~ , 서울 출생) 시인, 1975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 동 대학원 독문과에서 문학석사, 문학박사학위를 받음. 세부전공은 독일 현대시문학. 시집으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반달곰에게》,《아니다 그렇지 않다》,《크낙산의 마음》 등이 있음. 녹원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 한양대학교 독문과 교수 역임. 현재 명예교수로 있음.
하와이 호롤룰루해변-20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