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묘지
장정일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점심시간이 벌써 끝난 것도
사무실로 돌아갈 일도 모두 잊은 채
희고 아름다운 그녀 다리만 쫓아갔네
도시의 생지옥 같은 번화가를 헤치고
붉고 푸른 불이 날름거리는 횡단보도와
하늘을 오를 듯한 육교를 건너
나 대낮에 여우에 홀린 듯이 따라갔네
어느덧 그녀의 흰 다리는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
공동묘지 같은 변두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네
나 대낮에 꼬리 감춘 여우가 사는 듯한
그녀의 어둑한 아파트 구멍으로 따라 들어갔네
그 동네는 바로 내가 사는 동네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그녀는 나의 호실 맞은 편에 살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며 경계하듯 나를 쳐다봤네
나 꿈길인 듯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낯선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장정일
출생 1962년 1월 6일(1962-01-06) (52세)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성군
직업 소설가·작가·언론인·시인·수필가·극작가
활동 기간 1984년 ~
불우한 환경 속에 최종 학력이 중학교 중퇴임에도 불구하고, 독학과 독서를 통해 문학의 길에 입문하였다. 장정일은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3집에 <강정 간다>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하였다.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극작가로도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8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당시에 최연소의 나이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광화문광장-2014.4.14